선반 2번  최선미

작년, 수능 가채점 결과에 가장 실망한 사람은 내가 아닌 부모님이셨다. 안전빵이라 믿었던 수시지원 대학들 중에서 내 앞에서 예비가 끊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점수, 내 결과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보다 무감각했었다. 아니, 무감각한척 했다. 수능은 망했고, 수시 지원한 대학들은 결과가 나는 대로 탈락이었다. 참 막막했다.

그래도 부모님 앞에서 티를 내지 못하겠더라. 수능 공부는 뒷전이었던 과거의 내 모습 때문에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었다. 티는 내지 않으시려 했겠지만 은연중에 보이는 부모님의 실망하신 모습에 그제야 공부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정말 열심히 하고 노력했던 주변 친구들의 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부럽기도 했지만 부러움보다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먼저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 비해 내가 너무 모자란 것 같았다. 노력과 의지는 부족한 주제에 자존심만 높았던 나는 주변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싫었고, 그런 내게는 재수라는 선택만이 내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부는 다시하기 싫었지만 주변 사람들보다 모자란 것은 더 싫었다. 결국 부모님께 재수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하셨지만 결국 이 부족한 나를 한 번 더 믿어 보시겠다며, 허락해 주셨다. 그렇게 들어온 곳이 진덕여자기숙학원이었다.

엄마 친구 분의 추천으로 이곳을 알게 되었고, 12월에 상담을 받으러 진덕여자기숙학원에 왔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선행반에 들어오게 되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선행반에 처음 들어온 그 첫 주 동안 정말 탈출하고 싶었고 심지어 룸메 친구들은 날 창문 가까이에 가지 못하게 했다. 정말 그 때 당시만 해도 기숙학원에 들어오겠다고 한 내 자신을 원망하고 20세의 즐거움도 못 느끼는 것에 화도 났었다.

그렇지만 그 때부터 수학을 시작한 건 정말 다행이었다. 오히려 그때 선행반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등 떠밀었던 과장님께 감사하고 있을 정도다. 공대를 나오신 아빠를 뒀지만 당신의 지능은 전혀 닮지 않은 나는 수학에는 지지리도 재능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수학 공부방에서 수학 문제를 풀기 싫다고 집 보내 달라며, 엉엉 운적도 많을 정도로 수학에 대한 내 거부감을 엄청 컸었다. 그렇지만 우습게도 현재 수학 점수가 제일 점수 기복이 없는 과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일 잘 하고 좋아하는 과목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못하는 과목은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거다. 정말 내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수학 점수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특하게 봐 주셨던 선생님들의 도움이 무척이나 크다. 지금 이 자라를 빌어 수학 선생님들을 비롯한 모든 학과목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수학 수한 선생님께서 교무실 죽순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실 정도로 나는 틈나는 대로 질문을 했다. 귀찮은 기색 없이 질문을 받아 주셨던 선생님들 덕분에 이렇게 점수를 올리고 작년에는 도전하지 못했던 대학에 수시지원이긴 하지만 지원하게 되었다.

아직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결과를 떠나 나는 진덕여자기숙학원에서 공부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다. 물론 올해 내 결과는 분명히 좋을 것이라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시고 믿어주신 부모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휴가 나갈 때마다 갇혀 공부하는 것에 본인들이 더 마음 아파했던 친구들 모두에게 진심을 다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